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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라 & へ山行
へ山行(후기)/2008년 산행흔적

[스크랩] 동해 두타산,청옥산 무박 산행기

by 유리의 세상 2013. 9. 6.

 

    두타산,청옥산을 거쳐 무릉계곡은 가히 천하절경 이었다...

 

밤 10시 두타산을 향해 버스는 출발한다.

눈을감고 수면을 취해 보지만 좀처럼 잠은 오지 않는다.

미쳐 버린다 대충 눈만 감고 간것이다.

잠을 안자고 가는게 무박산행인가?

잠을 못자고 가는게 무박산행인가?

내가 생각 하기에는 잠이 안드는게 무박산행인것 같다.

그럭저럭 해서 댓재에 도착하게 된다.(03시25분)

버스에서 내리니 짙은 어둠속에 댓재 상징탑의 조명 불빛만이 환하게 비추고 있다.

날씨가 꽤 춥다 바람도 많이 불고..

 

 

 

댓재는 영동과 영서를 가르는 태백산맥 준령의 분수령이다.

424번 지방도가 지나는 해발 810m의 한적한 고갯마루 인것이다.

 

댓재란 이름은 댓재 동쪽아래 계곡에 대나무가 많은 댓골 이라는

마을이 있었던데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넓은 공터 한쪽에 휴게소가 있고 안내판에는 두타산 정상까지는

6.1km 라고 적혀있다.

 

 

선채로 시락국에 밥을 말아 요기를 좀 하고

두타산 산신령을 모시고 있다는 산신각 옆으로 산행은 시작된다.

산행로는 울창한 수림지대이다.깊은밤 어둠길 이지만

걷기에 편안하고 뚜렷한 등산로가 이어진다.

몇번의 오르내림을 반복하며 햇댓등에 도착한다.

사람이 간사하기는 이를데 없다 자켓을 벗어 베낭에 넣는다. 더워서..

 

 

햇댓등? 해를 맞이하는 곳이라는 모양인가? 아님 무슨 뜻일까?

왜 이런 지명이 붙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 엄청 궁금할 따름이다.

어두워서 주변을 살필수는 없었으나 햇댓등 부근에는

멋진 소나무들이 군락를 이루고 있음을 헤드랜턴 불빛을 통해 어림 잡을수 있었다.

 

 

나무 사이로 올려다 본 하늘은 어둠속이라 보이지 않고

서늘한 솔바람 소리는 으스스한 선율로 폐부를 파고든다.

이곳의 공기가 맑음에 기분은 상큼하다.

 

 

통골재를 지나 두타산까지 오름이 계속된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이른 꼭두새벽 부터

이 먼곳까지 와서 왜 이러는지 나 자신이 이해되지 않는다.

바보인가?  멍청이 인가? 미친놈인가?...ㅎㅎ

 

 

유월의 아침은 일찍 열린다.

4시반이 조금 넘었는데 사위가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조금씩 여명이 일더니 순식간에 날이 밝는다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불도 수행을 닦는다"는 뜻을 가진 두타산!

속세의 번뇌를 버리는것이 정말 힘든것처럼 오르는 한걸음 한걸음에

땀은 나지만 시원하게 불어주는 바람 때문에 덥지는 아니하다. 정말 힘이든다.

그래도 설레임 이란게 이런것일까?

보고싶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의 설레임도 있지만

이렇게 가보고 싶었던 산도 많은 설레임을 주는것 같다.

 

 

드디어 두타산 정상에 올라선다.

정상은 넓은 공터로 헬기장이 있고 표지석엔 두타산이라 한문으로 새겨져 있는데

그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정상이 좀 어수선해 보인다.

비박하신 다른 산님들의 텐트도 있고

정상부엔 이름없는 묘지가 하나 덩그러니 있다.

어느 집안의 묘일까?

명당 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높은곳에 묘를 쓰다니..?

죽어서 이곳에 묻힌들 무슨 극락행이 이루어 지겠는가?

 

 

정상에 선 기분은 온세상이 내품안에 들어오는것 같다.

풍광이 너무 아름답다.혼자 보기에는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가야할 청옥산과 백두대간을 잇는 능선자락들..

하지만 운해 때문에 멀리 동해시와 동해바다는 보이질 않는다.

 

 

간식을 나눠 먹고 다시 청옥산으로 향한다.내리막길이다.

잠부족인가? 좀 어지러운 기분이 감돈다.

항상 산은 많은 가르침을 주는것 같다.

그냥 쉽게 생각하고 와서는 안된다는것..

평소 몸을 무리 해서는 안된다는것을 뼈저리게 느낄수 있다.

 

 

박달령(재)에 도착해서 휴식을 좀 취한다.

여기는  울고넘는 그 박달재는 아니랍니다.(제천에 있음)

 

 

다시 문바위재를 지난다.

왜 문바위재라고 이름이 붙었을까?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아마도 학등을 넘어가는 재의 초입에

커다란 바위가 있다고 문바위재라고 이름이 붙어진것 같다.(혼자생각)

길고긴 오름길이 다시 시작된다.

인내력과 체력 싸움이다 진짜 힘들다..

 

 

힘들게 청옥산에 올라선다.

산이름이 너무 아름답다.

푸른 옥돌이 나왔다하여 청옥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하고

임진왜란 당시 유생들이 의병들의 정신이 죽지 아니한다는 뜻에서

청옥산이라 정하였다고도 한단다.

정상은 일부 우거진 숲때문에 조망은 전혀 없고

청옥산 1403m라는 표지석만 세워져있다.

 

 

그늘진 조금 너른자리에서 아침식사 시간을 가진다.

아침부터 생탁과 함께..캬~~

 

 

청옥산 정상에서 단체사진을 남기고 다시 연칠성령으로 향한다.

 

 

연칠성령은 이정표와 함께 자그마한 돌탑으로 자리를 잡고있다.

"연칠성" 이란 무슨뜻일까? 그 뜻이라도 좀 적어 두었으면...

이 돌탑은 지나는 이들이 하나둘 얹은것이 이렇게 되었겠지...

예전에는 산세가 험준하여 난출령이라 불리고

이 난출령 정상을 망경대라고도 불리었는데

인조원년 명재상 택당 이식이 중봉산 단교암에 은퇴 하였을때

이곳에 올라 서울을 바라보며 망경한곳이라 전해진단다.(안내판에)

 

 

지금부터는 마루금을 벗어나 무릉계곡으로 하산을 한다.

제법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지루한 힘든 하산길이라 양념하나 넣습니다.

 

"사랑해" 라는 말에대해..

첫글자인"사"자는 한자의 죽을"사" 자를 쓰는 것이며,

두번째 글자인 "랑" 자는 너랑나랑 할때 "랑" 자를 쓰는 것이며,

마지막자인 "해" 자는 같이하자 할 때 "해" 자를 쓰는 거란다.

사랑해란 말의 뜻은..

너랑나랑 죽을 때까지 같이하자 라는 뜻 인것이다.

아무한테나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말자.

사랑한단 말은 단 한사람에게

그 사람의 두 손을 꼭 잡고 말하는 거란다.

자기가 진짜 죽을때까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생기면

그때 하는 말이란다.

단 잊을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랍니다.

 

 

한참을 지루하게 내려오니 저 밑에서 물소리가 들려오고

칠성폭포를 만나게 된다.

폭포가 길가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시원한 물에 얼굴을 좀 씻는다.

이제 부터는 완경사의 좋은 길이 이어진다.

 

 

우측으로 깊이 패인 계곡의 절경이 시작된다.

정말 무릉계곡 이란 단어가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멋지고 아름다운 계곡이다.

여태껏 조망도 되지않는 갑갑함이 여기에서 전부다 보상되는 기분이다.

 

 

계곡의 운치는 내려갈수록 점점 더해진다.

계곡 전체가 커다란 바위로 깍아지른 암벽과 노송이 어울려

금세 무너질듯 아슬아슬하기만 하다.

 

 

정말이지 위대한 자연 앞에서의 인간은 나약한 존재임이 분명하다.

눈길 닿는곳마다 절경인 것이다.

멋진 풍광에 빠져 한참을 넋놓고 바라볼 뿐이다.

이 무릉계곡은 여러개의 폭포와 무릉반석,학소대,삼화사,금란정 등으로

1977년에 국민관광지 제1호로 지정을 받아낸 명소 랍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쁘다는 용추폭포이다.

이 깊은 산중에 숨겨진 비경이라 아니 할수 없다.

용추폭포는 3단으로 되어있어 계단으로 올라가서 위에폭포를 보노라니

10 여미터 높이의 폭포도 장관 이지만 양쪽에 버티고 있는

높다란 기암절벽이 가히 환상적이다.

물과 돌이 이룬 조화가 이렇게 오묘할 수가 있을까?

 

 

폭포줄기 오른쪽 벽에 "용추"라는 해서체를 써 놓았다.

어떻게 그 무시무시한 매끈한 벽에 매달려 글씨를 새길수 있었는지 궁금하다.

1797년 삼척부사 유한전이 이곳 바위에 "용추"라고 새기고

가뭄때엔 여기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또한 누가 새겨 놓았는지 알수는 없지만

바위에 새겨진 "별유천지"라는 글자가

이곳이 어디인지를 말해 주는듯 하다.

 

 

쌍폭포이다

왼쪽이 두타산 박달골에서 내려오는 물이고

오른쪽이 청옥산 바른골 물이 만들어진 폭포 정말 멋지다.

 

과연 무릉이라고 이름 붙일만하다.

넓은 계곡에 하얀 암반과 반석들..

계곡 주변에는 형형색색 암벽 단애들이 나체를 살짝살짝

가려주고 있는 노송의 군락이 저렇게도 아름다울수가..와아~

정말 모두가 감동 그 자체이다.

맑은 물은 티없이 흐르고 계곡은 여름에 많은 인파를 기다리는듯 하고..

 

 

조금 내려오니 아담한 삼화사가 무릉반석 끄트머리에 자리잡고 있다.

신라 선덕여왕 11년(642년) 자장율사가 창건한 절이라는데

고려의 왕건은 이곳에서 기도를 올린후 후삼국을 통일 했단다.

1997년 이 일대가 시멘트 공장의 채광지로 들어가자

중대사 옛터인 무릉계곡의 현위치로 이건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답니다.(안내문에)

 

 

무릉반석은 천명이 앉아 노닐수 있다는 거대한 암반이다.

석장암동 이라고도 불리는 반석 위에는 수 많은 글씨를 새겨 놓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조선선조 때의 명필가 양사언의 글씨이다.

 

 

옛날에 이 계곡의 아름다움이 널리 알려져 많은 시인 묵객과

저명 인사들이 드나들면서 계곡 바위에 그 흔적을 곳곳에 남겨

시나 글씨가 그대로 남아있다.

 

 

무릉계곡 이라는 이름을 얻은것은 조선조 명필 양사언이

이곳의 절경에 감탄해 무릉반석에

武陵仙院 中坮泉石 頭陀洞天(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 이라고

쓰면서부터 무릉계곡 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즉,"여기는 신선이 노닐던 이 세상의 별천지라

물과 돌이 부둥켜서 잉태한 오묘한 대자연에서 잠시 세속의 탐욕을 버리니

수행의 길 열리네" 라고 노래했다.

 

 

결코 인간이 찾을 수 없다던 무릉도원

신선들이 한바탕 풍류를 즐겼을 너른 반석과

옥처럼 맑은 물이 흐르는 무릉계곡은 가히 천하절경 이었다.

 

 

 

꿈에서나 가 봄직한 무릉계곡!!

언제 내 또다시 이곳을 찾는다면 또 밤잠을 설치며

그리운 님을 만나듯 반갑게 당신 품에 안겨 볼란다.

 

주차장에 도착하여 맛있는 수육과 하산주를 끝으로

긴 여정의 두타산 청옥산산행을 마무리 한다.

 

예 오늘 우리님들 비록 힘든 산행 이었지만

두타,청옥산과 아름다운 무릉계곡의 모습을 마음속에 담아 왔습니다.

모두들 오랫동안 두고두고 추억에 남을 겁니다.

마치 사랑하는 님을 그리워 하듯이...말입니다.

장장 22시간 동안 같이하신 님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참 신기한것은 오늘 날씨는 원래 비가온다고 했는데

산행내내 날씨 끝내 주었고 부산도착 하여 집 다가갈 즈음 천둥번개치고

비가오니 분명히 복받은 사람들 맞지예...

 

감사합니다.

가가로(홍보) 올림.

 

 

 

 

 

출처 : hgs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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