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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견

by 유리의 세상 2008. 10. 29.
안악이씨(安岳李氏)




시조 이 견(李 堅)은 1349년(충정왕 1) 동지밀직사사 상의(同知密直司事商議)를 지내고, 이듬해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가 되었다. 1359년(공민왕 9) 홍건적이 침입했을 때 이방실(李芳實) 등과 함께 장군으로서 이를 맞아 싸우다가 이듬해 2월에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 신부(辛富)와 더불어 전사했다.
이에 격분한 아군이 분말, 역전하여 적을 크게 무찌르고 압록강 건너로 몰아내었다. 그 공으로 그는 안악군(安岳君)에 추봉되었다. 그래서 후손들이 견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안악으로 하게 되었다.
시조의 묘소는 경남 의령군 궁류면 다현리에 있고 , 매년 가을에 향사하고 있다. 시조의 선계에 대해서는 파에 따라 구구하지만 고증할 문헌이 없어 밝히지 못하고 있다. 《안악이씨대동보(安岳李氏大同譜)》에 의하면 1657년에 창보(創譜)한 이후 1961년 대동보가 간행될 때까지 줄곧 시조를 견(堅)으로 하였을 뿐 그의 선계에 대해서는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안악이씨 상계에 시조 견이 이위(李魏)의 16세손이라 하여 그 세계를 별록(別錄)으로 전해왔다. 그러나, 이위가 1201년(신종 4)에 급제하여 판도판서(版圖判書)로 치사(致仕)했다고 되어 있어 1360년에 전사한 시조 견과의 상거가 불과 150여 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그의 16세손이라 함은 이치에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확실한 근거가 없으므로 족보 서두에 참고 자료로 기록만 해 두고 시조는 견으로 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시조 견의 현손 이 설(李 渫)이 예조참의를 지냈고, 설의 사촌 이 호(李 灝)는 예조판서를 지냈다. 이평(李枰)은 구관(九寬)의 아들로 1468년(세조 14)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대사간에 이르렀으며, 평의 아들 이희순(李希舜)은 1492년(성종 23)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이조좌랑을 거쳐 부사를 지냈다.
출처 : 안악사촌계
글쓴이 : 우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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