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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라 & へ山行
Life & Culture/Common Sense

오바마 관련 스크랩

by 유리의 세상 2008. 11. 6.

미국인의 마음 어떻게 사로잡았나?
'몽상가' 오바마가 보여준 '공감'의 힘
[미국 대선 취재기③] 네 개의 키워드로 본 오바마
  박성래 (news)
지구촌이 미국발 금융위기의 광풍에 휩싸이며 길을 잃었다. '신뢰의 위기'다. 진작에 신뢰를 잃고 이제 정권이양을 앞두고 있는 부시 대통령이 해결하기는 어려운 문제다. 공은 11월 4일 새로 선출될 미국 대통령에게로 넘어갈 것이다. 미국이 어떤 지도자를 선출할 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다. 미국 대선 격전지를 취재하고 돌아온 KBS 1TV '특파원 현장보고'팀의 박성래 기자가 취재후기를 보내왔다.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생생한 분위기를 토대로 대선 전망은 물론 방송에서 다루지 못한 다양한 뒷이야기들을 다룰 예정이다.  <편집자말>
   
제44대 미국 대통령 당선자 버락 오바마
ⓒ 버락오바마닷컴
오바마

 

[키워드 #1] 몽상가

 

오바마가 이겼다. 예상된 승리였지만 놀라운 것은 놀라운 것이다. 흑인이 미국 대통령이 되었다는 것도 놀랍지만 내게는 오바마 같은 '몽상가(dreamer)'가 '세상에서 가장 힘센 자'라는 미국 대통령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 더욱 놀랍다.

 

오바마는 몽상가다. 나의 평가가 아니라 오바마를 누구보다 잘 안다는 이복 여동생 마야(어머니가 인도네시아 남자와 재혼해 낳은 여동생)가 내린 평가다. 마야의 말로는 자기네 식구들은 전부 몽상가란다. 현실을 보고 실속을 차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평생 손해만 보고 살 사람들이란 뜻이다.

 

[키워드 #2] 거지

 

   
오바마의 의붓아버지 롤로 소에토로, 어머니 스탠리 앤 던햄, 동복 동생 마야 소에토로-응, 버락 오바마(왼쪽부터).
ⓒ 버락오바마
오바마
 

예닐곱 살 무렵 오바마는 인도네시아에서 살았다. 거지가 많았다. 어머니 앤은 거지만 보면 돈을 쥐여주었다. 이런 어머니를 보고 의붓아버지는 오바마에게 충고했다.

 

"여자들은 저렇게 어리석단다. 생각해 보렴. 네 호주머니에 돈이 얼마 정도 있니? 그리고 세상에 거지들은 몇 명이나 될 것 같니? 남자는 강해야 한단다. 강하지 않으면 힘센 자가 네 재산을 빼앗고 네 여자를 빼앗고 말 거야."

 

그러고는 오바마에게 권투연습을 시켰다. 동정심 때문에 손해만 보고 사는 몽상가 어머니와 지독하게 현실적인 의붓아버지. 정반대의 세계관이 충돌한다. 오바마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정답은 어머니다.

 

그로부터 15년 정도 지났을 무렵 오바마는 콜롬비아 대학을 졸업한 뒤 시카고에서 흑인 빈민운동을 하고 있었다. 동료 운동가 마이크 크루글릭의 전언. 오바마와 함께 커피숍에서 나오는데 젊은 거지 한 명이 오바마에게 다가와 구걸했다. 오바마는 어떻게 했을까?

 

"제 생각에 당신은 구걸보다 더 나은 걸 할 수 있어요. 당신 스스로 뭔가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당신은 당신 자신에 대해 훨씬 좋은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제 기분도 좋아질 것 같군요."

 

20대 중반의 오바마는 어머니보다 한 술 더 뜬다. 어머니는 돈만 주는데 오바마는 더 근본적으로 거지의 처지를 개선하려고 달려든다. 주먹이 날아올지도 모르고 다른 봉변을 당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키워드 #3]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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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앤이나, 오바마나 다른 사람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처럼 느끼는 공감(sympathy)의 능력이 두드러진다. 그냥 내 생각이 아니라 오바마의 생각이다.

 

"공감은 내 윤리관의 핵심이다. … 내가 지닌 대부분의 가치기준과 마찬가지로 공감이라는 가치도 어머니로부터 배웠다."

 

오바마는 비슷한 얘기를 수도 없이 많이 했다. 지난 8월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렸던 덴버의 스타디움. 8만의 청중들이 주인공 오바마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다. 전광판에선 오바마의 일생을 담은 동영상이 흘러나온다. 10분짜리 이 동영상에서 윤리관이나 철학 비슷한 얘기는 딱 하나 나온다. 바로 공감이다. 오바마의 내레이션이다.

 

"어머니가 정말 화내는 경우는 하나였습니다. 어머니가 잔인한 것을 봤을 때입니다. 누군가 괴롭힘을 받을 때, 누군가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입니다. 제가 그런 짓을 하는 걸 보시면 정말 불같이 화를 내셨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이렇게 말씀하곤 하셨습니다. '네가 그 사람의 입장이라면, 네 기분이 어떻겠니?' 이 간단한 생각을 어려서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 생각은 언제나 저와 함께 했습니다."

 

비슷한 말이 동영상이 끝나갈 무렵 다시 한 번 나온다.

 

"어머니께서 항상 하셨던 말씀이 떠오릅니다. '다른 사람 입장이라면 기분이 어떻겠니?'"(Imagine what it’s like in somebody else’s shoes )

 

이것이 오바마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결이다. 흑인 오바마가 맨주먹으로 세계 최강자에 오른 비결이다. 사람들이 느끼는 아픔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그러면서도 사람들의 상처를 보이지 않게 감싸는 공감 능력은 오바마의 주특기인 연설에서 찬란한 빛을 발한다. 이런 연설은 청중들의 마음 속에 화살처럼 날아가 꽂힌다. 오바마를 슈퍼스타로 만들어준 2004년 전당대회 연설의 한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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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남부 흑인 빈민가에 글을 못 읽는 아이가 있다면 비록 제 아이가 아니더라도 저한테는 중요한 일입니다. 어떤 어르신이 약값을 낼까 집세를 낼까 고민하고 있다면 비록 그분들이 제 할아버지 할머니가 아니라도 제 인생은 가난해집니다. 어떤 아랍계 미국인 가족이 변호사의 도움을 받지 못하거나 정당한 법 절차를 적용 받지 못한다면 그건 제 자유가 위협받는 겁니다. '나는 내 형제를 지키고 내 누이를 지키는 자라' 이 나라를 움직이는 것 이런 기본적인 믿음입니다."

 

믿기 어렵다면 유튜브에 들어가 보라. 오바마 연설 동영상이 널려 있으니 들어 보라. 오바마 영어는 그리 어렵지 않다. 그리고 청중들이 언제 박수를 치는지 보라. 오바마의 이야기가 청중들 자신들의 이야기로 바뀌는 순간 박수가 터져 나온다.

 

오바마는 청중들이 느끼는 감정의 동선을 귀신 같이 따라간다. 그것이 공감의 힘이다. 평생 손해만 보고 살 것 같은, 순진해 빠진 몽상가를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은 비밀의 한 축이 바로 공감이다. 몽상가의 예민한 공감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 마음을 얻은 자가 세상을 얻는다.

 

[키워드 #4] 변화

 

   
지난 3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샬럿 캠퍼스에서 유세중인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후보가 자신을 길러 준 외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전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EPA=연합뉴스
오바마

오바마는 이런 연설을 가지고 '변화'를 이야기 한다. 새삼스러운 슬로건은 아니다. 사실 '변화'는 진보주의자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말이다. 문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변화'에 저항한다는 것이다. 꼭 보수주의자가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오바마의 변화'에 열광하는 건 이유가 있다. 오바마는 변화에 공감을 섞는다. 오바마의 변화는 그냥 변화가 아니다. 거의 항상 '우리(We)'가 붙어 있다. '나의 변화'가 아니다.

 

오바마가 연설하는 단상에는 항상 이런 슬로건이 붙어 있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변화(CHANGE WE CAN BELIEVE IN)', '우리가 필요한 변화(CHANGE WE NEED)' ….

 

내가 진보주의자라고는 할 수 없지만 오늘날 대한민국 진보의 일패도지한 상황은 진보를 위해서나, 보수를 위해서나 좋을 게 없다.

 

대한민국 진보진영이 미국의 새로운 진보 오바마로부터 배울 것이 있다면 '공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공감'이야말로 진보의 핵심가치라 할 만하기 때문이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