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는 여름 꽃이다.
아를 지방에서 여름이면 해바라기 밭에 꽃이 만발하여 일대 장관을 이룬다.
그러나 고갱이 아를에 온것은 10월 말이기 때문에 해바라기 꽃은 다 시들 무렵이고 반 고흐
의 아틀리에는 말라빠진 몇송이 해바라기 만이 꽃병에 있었을 뿐이다.
고흐와 고갱은 지누부인과 롤랭 부인의 초상화를 같이 그리게 되었는데 얼마되지 않아
12월 초순에 고갱은 고흐에게 그림 한점을 그려서 주었다.
그것은 바로 <해바라기를 그리는 반 고흐> 였다.
해바라기를 그리는 반 고흐를 가까이에서 그린 이 그림은 한 눈에 그리 이상한 점은 있어 보이지 않는다.
고갱이 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시기는 날씨가 차가워져 야외 활동을 중단하고 방안에서
초상화를 그리던 무렵이다.
한데 고갱은 이 그림에서 반 고흐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바라기를 표현했다.
꽃잎이 다 떨어진 커다란 해바라기는 커다란 눈처럼 보인다.
역설적으로 반 고흐보다 해바라기가 더 눈을 크게 뜨고 있다.
이에 반해 반 고흐의 눈은 뜬것인지 감은 것인지 알 수 없고 눈 주변의 처리 때문에 멍한 표정으로 보인다.
그리고 고갱은 이젤과 반 고흐의 오른팔이 삼각형을 이루게 하여 반 고흐가 좋아한 V 자 구
성으로 표현을 한 것 까지는 괜찮았는데 그런데 반 고흐가 들고 있는 붓은 보통 붓과는 달
리 너무 가늘어서 붓이 아니라 마치 바늘을 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 이젤뒤의 벽에는 푸른나무 비슷한 고갱의 대형 풍경화가 보이고 이 그림의 소실점이 반
고흐 위에 있어 그림이 사람을 억누르고 있는 듯하다.
또 뒤돌아 놓아 화면이 보이지 않게 너무 얇게 그려져 있는 반 고흐의 캔버스에 있는듯 없는
듯하여 그림을 그리는것 같지 않다.
이렇게 이 그림에는 미묘하게 반 고흐를 낮추고 자신을 높이려는 고갱의 의도가 숨어 있었다.
이 그림을 본 고흐는 어이가 없어 했는데 그저 그림 앞에 서 있었을 뿐이었다고 한다.
이에 고갱의 그림에 대한 의도를 파악한 반 고흐는 조용히 물었다.
"이것이 나인가? "
"그래, 자네 아니면 누구겠는가? "
그러자 잠시후 고흐는 낮게 말했다.
"이것이 분명 나라면 제 정신이 아닌 나로군"
그러자 고갱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해바라기를 열심히 그리는 자네에게 경의를 표하느라고 그린 것일세"
반 고흐는 고갱이 자기의 재능을 이용하여 가혹하게 장난을 쳤으며 자신에게 도전한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리 예술적 표현은 자유라고 하지만 이것은 지나치게 고흐 자신이 농락 당한거라고 생각했다.
그림에는 표현하는 사람의 주관이 담긴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고흐는 더 이상 그림에 대
해 불만을 나타낼수 없었고 하지만 감정을 억누르는데도 한계가 있는 법이니 지누부인의 그
림에 이어 고갱의 표현이 가혹하다는것은 고흐에게 굴욕감을 안겨줬을 것이다.
그래서 고흐는 고갱과 같이 카페에 가서 압생트를 마시다 술잔을 고갱에게 던지는 것으로
불만을 표시했는데 아를에 와서 주량이 줄었던 고흐가 고갱이 온 후로는 다시 예전처럼 술
을 그것도 독한 압생트를 많이 마시게 되었는데 그것은 고갱의 그림이 화근이 되었다고 보는것이 맞을 것이다.
그 후 이 그림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고흐는 자기의 자화상중에 가장 날카로운 눈을 한 자화
상을 그리게 되었는데 이 자화상은 그의 왼쪽 귀가 그려져 있는 마지막 자화상이 되었다.
반고흐의 뛰어난 솜씨와 번개같이 그려 버리는 결단력에 자존심을 다쳤던 것을 복수하려고
지누 부인을 그리면서 초상화가 아닌 <아를의 밤의 카페>로 둔갑시켜 반 고흐의 주변 사람
들을 저속한 인물로 만들었던 고갱은 반 고흐가 기분이 상한 것을 알아채서인지 그 후에 그
린 룰랭 부인의 초상화를 그릴때는 정상적인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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