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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라 & へ山行
Study/Three Kingdoms Of China

삼국지 정사와 연의

by 유리의 세상 2008. 12. 1.

 

 

 

삼국지 정사와 연의

 

 

삼국지정사는 진나라의 진수가 저술하였다. 나는 우선 삼국지정사 옹호론을 피력하고 싶다. 삼국지정사가 위나라를 중심으로 썼다고 하는데 단지 그 이유가 위서가 촉서나 오서에 비하여 많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정사의 저자 진수는 진나라 사람이다. 진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바로 위나라를 멸망시키고 세워진 나라이다.

고로 오히려 위나라를 깎아내리면 깎아내렸지 추켜세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나라가 위나라의 전통을 계승한 나라가 아니라 조씨왕조를 뒤업고 세운 사마씨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위서가 다른 나라의 서보다 많은 이유는 그만큼 영토가 크고 인재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인물이 많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사서가 길어진 것이다. 영토의 넓이와 인물의 숫자대로 진수는 공정성을 들여 집필하였고 그 결과 위서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오서이며, 그 다음이 촉서이다. 많은 역사학자들도 진수가 집필한 삼국지정사의 객관성과 사서로써의 정통성을 높이 평가하는 바이다. 어떤이는 역사라는 학문을 두고 논리적으로 해명하라는 말을 하는데 무식한 소리일 뿐이다. 역사는 철학의 카테고리이지 수학의 개념이 아니다.

논리란 1 아니면 0 이란 식인데 역사는 생각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논리적이란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다만 역사를 평가하는 근거는, 첫째가 유물과 유적이며 둘째가 조작되지 않았다는 증거가 명백한 여럿 사서의 기록에 의존하여 셋째가 후세 사람들에게 계속 전해내려오는 전설을 참고하고 넷째가 그런 저런 데이터를 모두 종합하여 추측평론하여 오늘날 쓰는 것이 바로 역사서이다. 따라서 비평가들이 주장하는대로라면 모든 역사서는 믿을만한게 못되며 승자의 필체에 쓰여진 것이다.

그러나 그런식으로 따지면 우리는 역사에 대하여 아무것도 신뢰할 수 없을 것이다. 진수가 저술한 촉서에서 유비를 평가하길, 유비는 도량이 넓고 영민하며 영웅의 풍모를 갖추고 있었다고 전한다. 오히려 유약하고 100% 주변 신하들에게 의지하기만 하는 모습을 그린 삼국지연의보다 유비의 정확한 면모를 더 잘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이 한줄의 표현만으로 정사가 위나라 중심의 주관적 평가글이라는 편견을 떨쳐버리게 한다. 혹자는 진수가 제갈량에게 참수당한 진식의 아들이라고 하는데 기록에 의존한다면 진식이 참수당한 시기는 230년 쯔음이고 진수가 태어난 해는 232년 쯔음이다.

사실 어떤 혈연관계가 있었다고는 하더라도 직계부모의 원한이 아닌 이상 비뚤어진 사서를 집필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진수가 정말 원한이 있다면 제갈공명 한 사람일 것인 즉, 촉나라의 인재 모두를 깎아내릴 이유는 없는 것이다. 진수는 진나라 사람이다. 위나라에 구속되지도 않고, 오나라에 구속되지도 않으며, 촉나라에 구속되지도 않고 가장 자유롭게 삼국지의 역사를 나름대로 객관성있게 집필하였다. 진나라는 위나라를 멸망시키고 태어난 나라이다. 멸망시킨 나라에 대하여 대부분의 역사는 멸망당한 그 나라를 깎아내리고 그 군주의 평가를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수는 오히려 공정하게 위나라의 역사를 집필하였으며 조조를 영웅으로 집필하였고 유비 또한 손권보다 유능한 군주로 평하였으며 조운의 당양전투를 사실감있게 집필하여 조운의 담력이 거짓이 아님을 입증한다.

진수의 정사에서도 조운은 유비의 가족들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다시 적진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이를 본 미방이 유비에게 `자룡이 배신했습니다' 라고 고하나 유비는 `자룡은 날 배신할 사람이 아니다' 하며 끝내 조운을 믿었다 한다. 그에 보답하듯 자룡은 아두를 적진속에서 무사히 구출해 돌아왔다. 이 기록에서 보면 알 수 있듯 조운은 다시 말머리를 돌려 군주의 가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단기필마로 적진속으로 뛰어들어갔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반드시 적병들과의 백병전이 있었을 것이며 혼자의 몸으로 무사히 애 하나를 안고 탈출했다는 것만으로 진수는 조운의 면모를 깎아내림없이 사실대로 기록해주고 있는 것이다.

비록 글자수는 적지만 모든 역사서의 간략한 사실적 평가라는 공통된 특징일 뿐이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은 집필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후세 사람들이 추측을 하여 재평가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요즈음 사극드라마가 그런 경우이다. KBS1 태조 왕건 (이환경 저) 사극드라마는 한국판 삼국지연의라 할만하다. 이곳에서 궁예는 다시금 영웅으로 부활했고(사서에는 도량이 좁고 이기적이라는 비평만 있을 뿐이다) 견훤과 최승우 또한 항우장사와 제갈량과 같은 인물로 묘사되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고려사를 근거하여 저자의 상상력을 동원해 쓴 드라마이다. 고로 삼국지연의 또한 결국은 삼국지정사를 기초하여 나관중이라는 천재 작가가자신의 상상력과 가치관(유교정통론) 을 도입하여 촉을 중심으로 쓴 소설이다.

따라서 역사서와 소설은 그 평가가 동일할 수 없으며 나란히 설 수 없다. 어떤 이는 삼국지정사와 연의를 절충해서 평가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것 또한 무식한 소리다. 만약 실제로 개념 없는 사람이 이것을 절충하다보면 사실과 가상을 혼동하여 있지도 않은 내용이나 연의의 환타스틱한 공상적 내용까지 사실로 착각하여 혼동평가하는 사태가 일어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삼국지연의를 보면 철저하게 조조를 깎아내렸고 유비는 유약한 군주로 만들었으며 장비는 포악하고 술로 인해 실수를 잘하는, 용맹하지만 지능이 낮은 무대뽀 장군으로 만들어버렸다. 나관중이 가장 이상적으로 그린 장군은 `관우운장' 이며 제갈량과 조운은 나관중의 필체에 의하여 가장 화려하게 부활한 환타지 드라마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삼국지정사는 어떤가 오히려 연의보다 특정인물을 깎아내린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조조와 유비는 나란히 할 만한 영웅의 그릇으로 평하였고 제갈량을 특별히 깎아내린 기록도 없다. 필자가 집필한 `新제갈량전' 에서 보듯이 삼국지정사만을 근거로 평가해보아도 역시 최고의 재사는 제갈량이기 때문이다. 장비는 계략을 쓰는 명장이었고 조운은 적진으로 용감히 홀로 뛰쳐들어가 주인을 구한 충신이며 관우는 우금의 칠군을 몰살시켜 그의 명성이 중국전역에 떨쳤다고 전한다. 손권은 정치를 알고 인재를 골라 쓸 줄 알았으며 여포는 용맹하고 정치적 안목이 탁월했으나 배신을 잘하여 마침내 패망하였다고 전한다. 이런저런 기록을 뒤져봐도 진수의 삼국지정사는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 비해 오히려 더 객관성이 있고 공정하면 공정하지 한쪽으로 치우친 견해나 특정인물을 깎아내린 경우가 없다. 따라서 만약 100%의 신뢰는 없다 하더라도 삼국지정사와 삼국지연의 중에서 어느 것을 더 신뢰하여 역사적 평가를 내려야 한다고 질문한다면 필자는 정사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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