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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라 & へ山行
Study/Three Kingdoms Of China

조조와 양수(펌)

by 유리의 세상 2010. 11. 15.

양수는 장송이 허도에 왔을 때 장송의 편을 들어 조조의 비위를 거스른 적이 있었다. 그리고 한중으로 오면서 채옹의 비문을 해석해내서 조조의 비위를 거스른 바도 있었다. 그 외에도 양수는 조조의 뜻을 손쉽게 파악한 적이 많았다.

조조가 화원을 만든 적이 있었다. 화원이 완성되었을 때 조조가 와서 둘러보았다. 조조는 좋다 싫다 아무 말도 없이 문에다가 활(活)이라고 한 글자를 적어 놓고는 자리를 떠나 버렸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 사람들이 머리를 싸매다가 결국 양수를 불러 물어보았다. 양수는 글자를 보자마자 설명을 해주었다.

“문(門)에 활(活)자를 쓰셨으니 이것은 ‘넓을 활(闊)’이라는 말입니다. 승상께서는 화원의 문이 너무 넓어서 싫다고 하신 겁니다.”

즉시 문을 헐고 작은 문으로 다시 만들어 세웠다. 조조에게 다시 납시기를 청하니 조조가 와서 보고 마음에 들어하더니 사람들에게 물었다.

“누가 내 뜻을 알아냈느냐?”
“양수입니다.”

그 말에 조조는 양수의 재주를 칭찬했다. 그러나 양수의 재주가 자신만 못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그를 꺼리게 되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새북(塞北) 지방에서 수(酉+禾) 한 그릇이 온 적이 있었다. 양젖으로 만들어지는 수(?)는 북방의 유목민족만이 만들 수 있는 것으로 매우 희귀한 음식이었다. 조조는 그 그릇의 뚜껑에 일합수(一合?)라고 적은 뒤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나가 버렸다. 사람들이 아무 생각없이 조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데, 양수가 들어왔다. 양수는 조조가 적어놓은 글을 보더니 뚜껑을 열고 한 숟갈을 떠먹었다.

“모두 한 숟갈씩 맛을 보시지요. 맛이 아주 희한합니다.”

양수는 거리낌없이 모두에게 수(?)를 한 숟갈씩 떠먹게 했다. 조조가 돌아왔을 때 그릇은 텅 비어 있었다.

“이 음식을 어떻게 한 것이냐?”

조조가 묻자 양수가 대답했다.

“승상께서 적어놓은 대로 했습니다.”
“적어놓은 대로?”
“일인일구(一人一口)라 적어놓으셔서 그대로 시행했습니다.”

조조가 적은 일합(一合)을 풀어쓰면 일인일구(一人一口)가 된다. 이번에도 조조는 억지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 마음 속에는 양수에 대한 경계심이 더욱 크게 일었다.

 

이뿐이 아니었다.

조조는 밤에 누군가가 자신을 살해할까 늘 걱정을 했다. 그래서 아예 자신이 자는 동안에는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예방책을 강구해야 했다. 조조는 측근들에게 이렇게 말해 두었다.

“나는 꿈속에서 살인을 자주 한다. 내가 잠들었을 때는 내 곁에 오지 않도록 해라.”

하루는 조조가 낮잠을 자다가 이불을 걷어차 침상 밑으로 떨어뜨렸다. 시종 하나가 무의식적으로 그 이불을 덮어주러 다가갔다. 그 순간 조조가 벌떡 일어나 칼을 뽑더니 시종의 목을 날려버렸다. 조조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다시 쓰러져 잠이 들었다. 한참 후 깨어난 조조는 시종의 시체를 보고 깜짝 놀라 주위에 물었다.

“누가 내 시종을 죽였느냐?”

다른 시종들이 일어난 일을 사실대로 고하자 조조는 통곡을 하며 그를 후히 장사지내라 명했다. 이런 일이 일어나자 조조가 자다가 살인을 한다는 것을 모두 믿게 되었다. 다만 양수는 그런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았다. 양수는 시종의 장례 때 관을 가리키며 한탄했다.

“승상께서 꿈을 꾸신 게 아니라 자네가 꿈속에 있었던 거라네.”

조조가 이 말을 들었고 양수를 더욱 미워하게 되었다.

 

이런 조조의 믿음에는 양수의 출신도 한 몫을 하고 있었다. 양수는 태위 양표의 아들이었다. 양표는 원술과 통혼했다는 이유로 조조에게 고문을 받고 은퇴한 인물이다. 양표가 조조에게 원한을 가질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그 아들도 별반 좋은 생각이 없으리라 여긴 것이다. 물론 양수 자신이 원술의 외생질이 되는 것도 미움의 한 원인이었다.

그러나 양수의 죽음에는 더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양수는 후계자 계승 싸움에 개입해 있었던 것이다. 양수는 아버지 양표의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조 밑에 출사해 있었다. 명문대가의 자제답게 입신양명하기를 바랐던 것이다. 양수가 여러차례 조조의 의중을 짐작해 내고 그것을 자랑한 것은 조조에게 인정받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그럴수록 조조의 마음에서 멀어진 것을 양수는 알지 못했다.

양수가 조조의 3남인 조식의 편에 선 것도 그와 비슷한 이유였다. 장남인 조비에게 큰 하자가 있지 않았기에 조비가 왕위를 물려받는 것은 어찌보면 기정사실이었다. 다만 조식의 문재(文才)가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조조도 3남에게 후계를 맡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없진 않았다. 도박은 판돈이 큰데 걸어야 뒷날 남는 것이 많다. 양수는 큰 도박판에 뛰어들었다.

더구나 조비 곁에는 이미 가후, 조진, 오질(吳質)을 비롯한 측근들이 포진하고 있어 끼여들 곳도 마땅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식은 양수의 학문을 높이 평가해 주었으니까.

조비도 셋째 조식이 만만찮은 적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조비는 조가장(朝歌長) 오질을 불러 대책을 논의하곤 했다. 궁에 사사로이 사람을 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조비는 오질을 자루에 넣어 비단이라고 속여 궁문을 통과하게 했다. 양수가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조조에게 밀고를 했다.

조조가 이 사실을 조사한다는 것이 조비에게도 알려졌다. 조비는 크게 걱정이 되어 오질과 이 문제를 논의했다. 오질은 당황하지 않았다.

“걱정마십시오. 내일 진짜로 비단을 들여오시면 의혹이 풀릴 것입니다.”

조비는 오질의 말대로 이번에는 진짜 비단을 넣어 궁으로 들여오게 했다. 조조의 부하들이 철저히 짐을 수색했으나 조비의 말대로 비단일 뿐이었다. 조조는 양수가 조비를 무고했다고 믿게 되었다.

하루는 조조가 두 아들의 능력을 시험하고자 업도를 나가 공무를 처리하라고 명했다. 그리고 궁문의 수문장에게는 아무도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는 밀명을 내렸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성을 나가려던 조비는 수문장에게 가로 막혀 그냥 돌아오고 말았다. 그 말을 듣고 조식이 양수에게 상의를 했다. 양수가 말했다.

“왕명을 받아 성을 나서려는데 감히 막는 자가 있다면 베어버려도 무방합니다.”

조식이 양수의 말을 듣고 성문을 나서려 하는데 이번에도 수문장이 가로막았다. 조식이 호통을 쳤다.

“나는 왕명을 받든 몸이다. 감히 누가 나를 막느냐!”

바로 칼을 들어 수문장의 목을 베어버렸다. 조식의 이런 과감한 행동이 조조의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뒷날 그것이 양수의 가르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조는 그 말에 조식까지 미워질 정도가 되었다.

양수는 답교(答敎)라는 십여 항목에 달하는 문서를 만들어 놓고 조식에게 가르쳤다. 조조가 불식간에 질문을 하면 그에 대처할 수 있는 모범답안을 만들어 준 것이다. 조조는 조식이 문장은 뛰어나지만 국가 경략의 대계를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런 문제를 물어보자 조식이 청산유수로 답변을 해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이것 역시 양수의 가르침이라는 것을 알자 조조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말았다. 조조 자신이 헌제의 배후 조종자였다. 자신과 같은 이를 길러 자신의 아들이 헌제 노릇을 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이것이 양수와 더불어 조식까지 미워하게 된 이유기도 했다.

 

조식이 후계자가 되건 되지 않건 양수는 반드시 죽어야 했다. 너무나 위험한 인물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계륵 사건으로 군심을 기만했다는 것은 훌륭한 죄목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 심한 처사기도 했다. 양수가 군령을 발한 것도 아니었다. 자신과 수하들의 짐을 꾸렸을 뿐이었다. 잘못을 따진다면 자기 부대에게 철군 준비를 명한 하후돈에게 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조조는 하후돈마저 참수형에 처하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다행히 이번에는 주위에서 만류가 수없이 들어와 조조는 못 이기는 척 물러설 수 있었다. 조조는 성질을 부리며 내일 결전을 벌여 한중을 되찾겠다고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