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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라 & へ山行
へ山行(후기)/2024년 나들이

백두산 땜빵 비월 장백산

by 유리의 세상 2024. 2. 20.

아침 일직기상하여 1층 식당으로 간다.

7시 40분 출발이고 7시부터 식당개방 이도백하에서의 호텔은 4성급이지만 수준은 조금 낮은 편이란다.

그러나 메뉴는 여러 가지이고 조금씩 가져와도 배 부르다.

 

 

 

 

제일 먼저 우리 차에 왔고 시간이 되었는데 가이드가 보이지 않는다.

5분 뒤 일행을 가이드가 데려왔고 우리 29명이 37인승 대형 버스에 다 모였다.

 

가이드의 무거운 한 말씀^^

아침 한 시간 뒤 제설작업 후 백두산을 개방한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바로 조금 전 바람이 불어서

위험하다고 천지 개방을 하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향후일정을 어떻게 할지 여행사 하나투어와 협의할 시간 동안 주위 공원으로 왔다.

 

 

 

 

온천욕, 비월장백산 등 한 가지를 여행사에서 부담하겠다 하여

온천욕은 50불이고 비월은 40불이지만 모두 비월상영관으로 이동을 한다.

 

 

 

 

4D로 안경 없이 시청한다는데 상영관이 10군데도 넘게 있는데

제일 안쪽 상영관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중국인들이 새치기를 하여 우리 4명이 다음 상연을 보게 되었다.

 

상하 틸팅, 앞뒤 전후진 할 수 있는 의자 위로 찬물 미스트 분사, 찬바람 노즐등이 장치되고

화면 조건에 따라 의자가 춤을 추는 있는 소천지, 천지등을 날아오르는 스릴만점의 영상이다.

 

안전벨트를 매어야 할 정도로 좌석이 움직이고 오금이 저려 여기저기 탄성을 지른다.

특히 날씨가 흐리고 운무로 잘 볼 수 없었던 황산 서해 대협곡을 비행할 때는

설악산에 견줄만한 황산의 빼어난 절경에 감탄이 나왔다.

 

백두산 소천지와 천지를 비행할 뿐만 아니라 그동안 중국을 다녀온 여러 곳을

날아올라 새처럼 볼 수 있어서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북파 서파 동파 남파를 모두 위에서 구경하였으니 천지 땜빵으로 모두들 훌륭하다고 하였다.

3D가 아닌 4D로 안경 없이도 좋은 영상을 제작하고 많은 상영관을 지은 발상이 배울만 하다고 생각 들었다.

 

 

 

 

 

용정으로 어제 다니지 못한 관광을 이어 가면서 차창으로 소나무 한 그루와 정자 하나

선구자의 푸른 솔 일송정을 보았다.

일제의 탄압이 이곳 북간도 까지 자행되었고 생체실험까지도 하여 우리 민족의 울분이 있는 역사적인 땅이다.

 

 

 

 

순천회관에서 식사를 하고 카운트 옆에 붙어 있는 액자의 글을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버려야 얻을 수 있다는 유명한 말이라 하는데 글은 잘 모르겠다 한다.

그 정도는 나도 잘 아는데 중국어는 잘 하지만 한문에는 약한 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인생을 살면서 버림이 있어야  얻을 수 있고(인생유사방가득)

버리지 못하면 얻을 수 있는 것이 없다는(무사무 부득야) 말 같은데 검색을 해도 잘 없네....

최인호 님의 '상도'에서의 '계영배'와 유사한 그런 뜻으로 넘침을 경계하라는 말이 맴돈다.

6학년인 우리가 새겨야 할 명언이라 생각된다.

 

 

 

 

윤동주 생가를 방문하였다.

 

가슴 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별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쉬이 아침이 오는 까닭이요,
내일 밤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

《별 헤는 밤》
 
 
 

일제강점기 시인, 독립운동가.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특유의 감수성과 삶에 대한 고뇌, 독립에 대한 소망이 서려 있는 작품들로 인해 한국 문학사에 큰 기여를 한 문인이다. 사실상 김소월, 한용운 등과 함께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시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특히 그의 유고시집인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서시는 지금도 자주 회자되는 데다 교과 과정에서도 배우기 때문에 한국 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13]

오늘날 일반인들은 윤동주 하면 주로 시인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지만, 상술했듯 윤동주는 엄연히 독립운동가였다. 직접적인 무장투쟁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은 저항시, 그리고 삶의 고뇌에 대한 시를 많이 썼고, 결국 체포된 와중에도 2010년에 세상에 공개된 윤동주 재판 관련 문서를 살펴보면 놀라운 점이 많다. 윤동주는 당시 악명 높았던 특고 앞에서도, 일제 재판관 앞에서도 당당했다. 내성적인 이미지의 시인은 사라지고, 형사 앞에서도 조선 독립에 대한 열망과 대책을 열정적으로 토로하기를 마다하지 않은 독립투사의 이미지가 선명히 다가온다. 윤동주의 판결문에는 민족의식을 고취하여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구체적인 운동 방침을 논의했다는 사실도 적시돼 있다.

윤동주 본인은 독립운동을 하면서도 일본 유학으로 인해 민족의 걸어가야 하는 길과 다른 길을 걷는 것 아닌가 싶은 자신의 행적을 반성하고 이에 대한 부끄러움[14]을 나타낸 것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정작 1930년대부터 일제의 강압과 회유책에 많은 문인들이 절필 혹은 변절하는 세태 속에 [15], 윤동주는 죽는 날까지 독립운동을 하다 죽었기 때문에 윤동주는 이육사와 더불어 민족시인으로 추앙받는다.

 
 

다음으로 용정의 용우호공원

함경도에서 이주한 우리 민족이 여진족이 사용한 이 우물의 물을 마셨다고 한다.

 

 

 

 

제2회 2024 연길 꽃등축제가 열리고 있는 민속촌 방문

 

 

 

 

 

 

 

애득안마에서 발마사지 후 청산관성에서 양꼬치 무한리필~

일행 29명 중 부부로 온팀이 2팀 이라는데 덕천동에서 오신 님과 4인상으로

배 터지게 먹고 약주는 어제 과음으로 사양하고 맥주로만 입가심으로 한 잔 후 백산호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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